자랑스러운 후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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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사공파의 자랑스러운 후예
휘 을연(乙椽, 12세, 대전) : 파조 휘 위(緯)의 자(子), 자(字) 구산(九山) 호(號) 해송(海松) 성균진사 응교(應敎)
휘 이룡(樆龍, 13세, 대전) : 파조 휘 위(緯)의 손자, 자(字) 경일(景日) 호(號) 매헌(梅軒) 武科, 도사(都事)
휘 승춘(承春, 14세, 대전) : 파조 휘 위(緯)의 증손, 자(字) 응백(應伯) 호(號) 죽산(竹山) 武科, 병마절제도위(兵馬節制都尉)
휘 승학(承熒, 14세, 대전) : 파조 휘 위(緯)의 증손, 자(字) 응지(應之) 호(號) 서암(西岩) 武科 오위도총부도사(五衛都摠府都事)
휘 시흥(時興, 15세, 1586~1649, 대전) : 휘 승춘(承春)의 자(子), 자(字) 창의(昌義), 호(號) 청암(靑庵) 광해조 6년 갑인 무과 등제 훈련원 판관. 첨정소위장군 의흥위호군(僉正昭威將軍義興衛護軍).
휘 경국(經國, 16세, 1614~1676, 대전) : 자 명문(明文), 호 매봉(梅峰). 인조 13년 을해 성균진사. 성균관전적 직강, 통훈대부, 승문원 판교 (承文院 判校).
휘 진양강씨(晋陽姜氏, 22세 휘 하종(夏鍾, 22세)의 配, 1836~1887, 대전) : 진양강씨는 소유 안장하고 있던 익산시 왕군면 동용리 산17번지를 매각하여 매각대금 2천만원 전액을 사천향원 조성에 사용하였다. 가정 중 경제가 넉넉하지 못한 자손들도 있었지만 선뜻 사천향원 조성에 기부하였다.
휘 귀영(龜永, 23세, 1860~1890, 대전) : 휘 하종(夏鍾)의 四남, 자(字) 사해(沙海). 1875년(고종12년) 5월 무과(武科)에 합격하여 순우군관의 교지를 받았고, 1884년(고종 21년) 3월 선략장군 행양용위 부사과자 교지를 받았다.
휘 혁영(赫永, 23세, 1850~1896, 익산) : 휘 은종(殷鍾)의 자, 1875(고종12년)년 5월 무과에 급제하여 겸사복에 임명되었다. 1883년(고종20년)10월 절충장군의 교지를 받았고 配김해김씨는 숙부인 교지를 받았다. 절충장군교지에 특별히 ‘판하 금군녹시사시 이전 변이중 가자사 별단(判下 禁軍祿試射詩 泥箭 楹二中 加資事 別單)’이라 부기하였다. 임금께서 이 교지를 보고 재가 하였다. 임금에게 올리는 휘 혁영의 절충장군 임명을 위한 본 문서에 별도의 문서(別單)를 첨부하여 임금이 참고할수 있도록 하였다. 왕의 신변과 왕실의 안전을 책임지는 친위 부대인 금군에서 녹봉(승급)을 정하기 위하여 활쏘기 시험을 했는데 이전이라는 화살로 활를 쏘는 조건을 여러가지로 바꾸며 실시하였다. 이 시험에서 변두리 두 개의 과녁을 동시에 명중시키고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기에 절충장군으로 임명하고자 한다고 올리니 임금이 재가(判下)하였다는 내용으로서 금군의 최고책임자에 오른 것은 위와 같이 무술이 뛰어 났을 뿐 아니라 임금과 조정의 신임이 깊은 명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.
휘 효근(孝根, 24세, 1903~1964, 대전) : 휘 치범(致範)의 장남, 일제강점기 현 대전시 갈마동과 목동에 군비행장과 대전사범학교를 건설할 때에 분실할 위기에서 그 두 곳에 자리한 다수의 선영을 이전하여 잘 보전하였고,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난시에도 11세 파조 이하 선조 묘소를 잘 관리하는 등 헌신한 덕분에 후손에게 잘 전하여 사천향원에 실전없이 모시게 하였다.
병대(炳大, 25세, 1938~, 대전) : 휘 효근(孝根)의 장남, 청양군 장평초, 대전 가수원초교감, 대전광역시 교육청 장학사, 인사담당 장학관, 대전광역시 천동초, 원평초, 한밭초교장, 교육부장관표창 2회, 황조근정훈장 등 수훈, 1998년부터 2000년까지 41년 재직, 1998년 인사담당 장학관 재직시 전국 광역시 중 유일하게 대전광역시 전체를 단일 인사권으로 하는 교원전보제도를 창안하여 교원이 자기 주소지 인근 학교로 발령받게 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. 1977년~2019년까지 진사공파 총무와 회장을 맡아 종규를 제정하여 국가에 등록하고, 종연리 산7번지 외 1필지에 사천향원 조성 등 실무를 맡아 완공하고, 진사공파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큰 공헌을 하였다.
휘 복수(福壽, 25세, 1917~1992, 대전) : 대전시 금고동에 파조 이하 많은 선영이 모셔져 있었다. 조선말기에 집안의 몰락으로 묘역을 관리할 수 없을 때, 성심을 다해 하루가 멀다고 묘역을 돌보았으며, 폭우나 한파로 손상된 봉분을 보수하고 벌초하는 등 평생 보여준 헌신 덕분에 선대의 묘소가 잘 보전되어 사천향원으로 이전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.
재옥(在玉, 26세, 1926~, ) : 병원(炳元)의 자. 호 호정(湖亭). 논산시 가야곡면·채운면장, 연무읍장, 논산시농지개량조합장. 1975~2005 진사공파 종중회장을 맡아 사천향원을 조성하여 후손들의 장지 문제 해결.
강식(康植, 26세, 1959~, 대전) : 병대(炳大)의 자. 대전일보사 편집부국장, 논설위원, 재직기간 27년.
남은경(南恩京, 宜寧人, 1963~, 대전) : 26세 강식(康植)의 配, 父는 논산 내동초등학교장, 금산군교육청교육장, 충남교육위원회의장을 역임한 우직(祐直)이고, 장녀이며, 대전 기성초, 금동초, 대전 도안초 교감, 대전 내동초교장, 교육부장관상, 황조근정훈장 수상.
형창(亨昌, 27세, 1970~, 경기 군포) : 병화(炳和)의 자. 한국수자원공사 차장.
휘 석현(石鉉, 27세, 1940~2006) : 성재(聖在)의 자. 호 청봉(靑峰). 논산시 양촌면장・노성면장, 논산시의회 의원.
승현(承鉉, 27세, 1955~, 경기 광명) : 재춘(在春)의 자. 항공기술학교 교육대대장 겸 부교장, 공군전투비행단 군수전대장, 공군대령.
남도(南導, 27세, 1972~, 경기 성남) : 재용(在容)의 자. 이남도세무회계사무소 대표 세무사.
남길(南佶, 27세, 1976~, 경기 성남) : 재용(在容)의 자. 신화회계사무소 상무, 공인회계사.
남민(南玟, 27세, 1962~, 논산) : 재호(在浩)의 자, 한국농어촌공사(세종지사) 관리과장, (공주지사)강남지소장, 논산지사 수자원관리부장, 충남지역본부 스마트그린(기전)부장, 2000년부터 2026년 현재까지 종친회 총무를 맡아서 사천향원관리 등 특히 종중자금 및 자산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종원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였으며, 남민의 配 서은식(徐銀植)은 매년 시제의 음식을 준비했고, 종친회 행사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그 행사에 솔선수범하였다. 또한 사천 대종회 행사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참석하였다.
남걸(南杰, 27세, 1992~, 대전) 강식(康植)의 자,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, 삼일회계법인 공인회계사.
여진(侶辰, 27세, 1995~, 대전) : 강식(康植)의 장녀, 건양대학교 의과대학졸업, 서울아산병원 수련의 전공의 후 소화기내과 전문의 재직, 1997년 류마티스에 관한 연구 논문이 세계과학저널( SCI )에 등록됨.
정현(貞賢, 27세, 1970~, 인천) : 재영(在榮)의 자. 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.
세규(世奎, 28세, 1965~, 세종시) : 휘 석현(石鉉)의 자. 고용노동부 충남지방노동위원회 사무관.
(각 종파별 자랑스러운 후예는 다음의 해당 파를 선택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.)
진사공파의 자랑스러운 후예
휘 을연(乙椽, 12세, 대전) : 파조 휘 위(緯)의 자(子), 자(字) 구산(九山) 호(號) 해송(海松) 성균진사 응교(應敎)
휘 이룡(樆龍, 13세, 대전) : 파조 휘 위(緯)의 손자, 자(字) 경일(景日) 호(號) 매헌(梅軒) 武科, 도사(都事)
휘 승춘(承春, 14세, 대전) : 파조 휘 위(緯)의 증손, 자(字) 응백(應伯) 호(號) 죽산(竹山) 武科, 병마절제도위(兵馬節制都尉)
휘 승학(承熒, 14세, 대전) : 파조 휘 위(緯)의 증손, 자(字) 응지(應之) 호(號) 서암(西岩) 武科 오위도총부도사(五衛都摠府都事)
휘 시흥(時興, 15세, 1586~1649, 대전) : 휘 승춘(承春)의 자(子), 자(字) 창의(昌義), 호(號) 청암(靑庵) 광해조 6년 갑인 무과 등제 훈련원 판관. 첨정소위장군 의흥위호군(僉正昭威將軍義興衛護軍).
휘 경국(經國, 16세, 1614~1676, 대전) : 자 명문(明文), 호 매봉(梅峰). 인조 13년 을해 성균진사. 성균관전적 직강, 통훈대부, 승문원 판교 (承文院 判校).
휘 진양강씨(晋陽姜氏, 22세 휘 하종(夏鍾, 22세)의 配, 1836~1887, 대전) : 진양강씨는 소유 안장하고 있던 익산시 왕군면 동용리 산17번지를 매각하여 매각대금 2천만원 전액을 사천향원 조성에 사용하였다. 가정 중 경제가 넉넉하지 못한 자손들도 있었지만 선뜻 사천향원 조성에 기부하였다.
휘 귀영(龜永, 23세, 1860~1890, 대전) : 휘 하종(夏鍾)의 四남, 자(字) 사해(沙海). 1875년(고종12년) 5월 무과(武科)에 합격하여 순우군관의 교지를 받았고, 1884년(고종 21년) 3월 선략장군 행양용위 부사과자 교지를 받았다.
휘 혁영(赫永, 23세, 1850~1896, 익산) : 휘 은종(殷鍾)의 자, 1875(고종12년)년 5월 무과에 급제하여 겸사복에 임명되었다. 1883년(고종20년)10월 절충장군의 교지를 받았고 配김해김씨는 숙부인 교지를 받았다. 절충장군교지에 특별히 ‘판하 금군녹시사시 이전 변이중 가자사 별단(判下 禁軍祿試射詩 泥箭 楹二中 加資事 別單)’이라 부기하였다. 임금께서 이 교지를 보고 재가 하였다. 임금에게 올리는 휘 혁영의 절충장군 임명을 위한 본 문서에 별도의 문서(別單)를 첨부하여 임금이 참고할수 있도록 하였다. 왕의 신변과 왕실의 안전을 책임지는 친위 부대인 금군에서 녹봉(승급)을 정하기 위하여 활쏘기 시험을 했는데 이전이라는 화살로 활를 쏘는 조건을 여러가지로 바꾸며 실시하였다. 이 시험에서 변두리 두 개의 과녁을 동시에 명중시키고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기에 절충장군으로 임명하고자 한다고 올리니 임금이 재가(判下)하였다는 내용으로서 금군의 최고책임자에 오른 것은 위와 같이 무술이 뛰어 났을 뿐 아니라 임금과 조정의 신임이 깊은 명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.
휘 효근(孝根, 24세, 1903~1964, 대전) : 휘 치범(致範)의 장남, 일제강점기 현 대전시 갈마동과 목동에 군비행장과 대전사범학교를 건설할 때에 분실할 위기에서 그 두 곳에 자리한 다수의 선영을 이전하여 잘 보전하였고,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난시에도 11세 파조 이하 선조 묘소를 잘 관리하는 등 헌신한 덕분에 후손에게 잘 전하여 사천향원에 실전없이 모시게 하였다.
병대(炳大, 25세, 1938~, 대전) : 휘 효근(孝根)의 장남, 청양군 장평초, 대전 가수원초교감, 대전광역시 교육청 장학사, 인사담당 장학관, 대전광역시 천동초, 원평초, 한밭초교장, 교육부장관표창 2회, 황조근정훈장 등 수훈, 1998년부터 2000년까지 41년 재직, 1998년 인사담당 장학관 재직시 전국 광역시 중 유일하게 대전광역시 전체를 단일 인사권으로 하는 교원전보제도를 창안하여 교원이 자기 주소지 인근 학교로 발령받게 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. 1977년~2019년까지 진사공파 총무와 회장을 맡아 종규를 제정하여 국가에 등록하고, 종연리 산7번지 외 1필지에 사천향원 조성 등 실무를 맡아 완공하고, 진사공파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큰 공헌을 하였다.
휘 복수(福壽, 25세, 1917~1992, 대전) : 대전시 금고동에 파조 이하 많은 선영이 모셔져 있었다. 조선말기에 집안의 몰락으로 묘역을 관리할 수 없을 때, 성심을 다해 하루가 멀다고 묘역을 돌보았으며, 폭우나 한파로 손상된 봉분을 보수하고 벌초하는 등 평생 보여준 헌신 덕분에 선대의 묘소가 잘 보전되어 사천향원으로 이전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.
재옥(在玉, 26세, 1926~, ) : 병원(炳元)의 자. 호 호정(湖亭). 논산시 가야곡면·채운면장, 연무읍장, 논산시농지개량조합장. 1975~2005 진사공파 종중회장을 맡아 사천향원을 조성하여 후손들의 장지 문제 해결.
강식(康植, 26세, 1959~, 대전) : 병대(炳大)의 자. 대전일보사 편집부국장, 논설위원, 재직기간 27년.
남은경(南恩京, 宜寧人, 1963~, 대전) : 26세 강식(康植)의 配, 父는 논산 내동초등학교장, 금산군교육청교육장, 충남교육위원회의장을 역임한 우직(祐直)이고, 장녀이며, 대전 기성초, 금동초, 대전 도안초 교감, 대전 내동초교장, 교육부장관상, 황조근정훈장 수상.
형창(亨昌, 27세, 1970~, 경기 군포) : 병화(炳和)의 자. 한국수자원공사 차장.
휘 석현(石鉉, 27세, 1940~2006) : 성재(聖在)의 자. 호 청봉(靑峰). 논산시 양촌면장・노성면장, 논산시의회 의원.
승현(承鉉, 27세, 1955~, 경기 광명) : 재춘(在春)의 자. 항공기술학교 교육대대장 겸 부교장, 공군전투비행단 군수전대장, 공군대령.
남도(南導, 27세, 1972~, 경기 성남) : 재용(在容)의 자. 이남도세무회계사무소 대표 세무사.
남길(南佶, 27세, 1976~, 경기 성남) : 재용(在容)의 자. 신화회계사무소 상무, 공인회계사.
남민(南玟, 27세, 1962~, 논산) : 재호(在浩)의 자, 한국농어촌공사(세종지사) 관리과장, (공주지사)강남지소장, 논산지사 수자원관리부장, 충남지역본부 스마트그린(기전)부장, 2000년부터 2026년 현재까지 종친회 총무를 맡아서 사천향원관리 등 특히 종중자금 및 자산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종원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였으며, 남민의 配 서은식(徐銀植)은 매년 시제의 음식을 준비했고, 종친회 행사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그 행사에 솔선수범하였다. 또한 사천 대종회 행사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참석하였다.
남걸(南杰, 27세, 1992~, 대전) 강식(康植)의 자,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, 삼일회계법인 공인회계사
여진(侶辰, 27세, 1995~, 대전) : 강식(康植)의 장녀, 건양대학교 의과대학졸업, 서울아산병원 수련의 전공의 후 소화기내과 전문의 재직, 1997년 류마티스에 관한 연구 논문이 세계과학저널( SCI )에 등록됨.
정현(貞賢, 27세, 1970~, 인천) : 재영(在榮)의 자. 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.
세규(世奎, 28세, 1965~, 세종시) : 휘 석현(石鉉)의 자. 고용노동부 충남지방노동위원회 사무관.